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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에 대하여

사람들은 30대가 얼마나 자유롭고 힘이 넘치는 시기인지에 대해 자주들 말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거울을 볼 때, 지나버린 가능성의 무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종종 느낀다. 살지 않은 삶들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처럼 옷장에 걸려 있는데, 도무지 내다 버릴 수도 없다.

어리고 젊었던 시절, 우리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언제나 놀라움에 취해 있었다. 꿈의 만화경을 손에 쥔 채 상상했다. 각기 다른 직업, 연인, 도시, 아직 만나지 않은 미래의 자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왜냐하면, ‘이론적으로는’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가지 못한 길은 점점 늘어갔고, 풀어보지 않은 운명의 실타래는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는 한때의 꿈을 스노우볼에 가두어, 가짜 움직임에 사로잡힌 하나의 미약한 세계로,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상태로, 얇은 유리 안에 간직한다.

그리고는 곧 진실을 깨닫는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고. 힘은 점점 야위어 가는 자원이라고. 가능성은 갑자기 엄청난 사치품으로 변모한다. 숭고하고 탐나지만 넘볼 수 없을 만큼 비싸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앞에 놓였던 선택, 즉 결혼 상대를 찾고, 샌프란시스코 대신 시애틀에 직장을 구하고, 아이를 가지거나 그렇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어떤 가능성을 통째로 벌목해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어록이라고 잘못 알려진 문구를 냉장고에 붙여 놓았었다. ‘중요한 건 이거야. 네가 되고 싶은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 경우에는, 빠르지도 않다는 것.’ 나는 아직 이 말을 믿는다. 정말이다. 변화를 믿고,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를, 재건을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은 현실과 반드시 발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서 현실은 우리가 얽매인 진실을 가감없이 내보이는 역할을 한다. 나이, 상황, 감정적 및 물리적 한계. 우리는 모든 평행우주를 살아볼 수는 없다. 모든 분기점을 탐색할 수도 없고, 마음이 동하는 모든 사랑을 좇을 수도,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인 모든 열정을 불태울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설령 평행우주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길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것은, 일종의 마음가짐인데, 후회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잃어온 대상과 남아있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기는 하다. 바로 이것이 내 삶이라는 마음가짐. 지붕이 새는 집, 유급 휴가라고는 그림의 떡인 직업,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생일은 결코 잊지 않는 친구들. 이것이 내가 된 나의 모습이다.